"3일 후면, 이 아이에게 황산(黃酸) 끼얹은 범인이 웃는다."

지난 4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여섯 살 남자 어린이에게 황산을 끼얹어 숨지게 한 범인이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되는 7일까지 잡히지 않으면 영원히 처벌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이 범인은 결국 잡히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공소시효는 최장 90일 연장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살인죄 공소시효 문제가 또다시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이 어린이는 1999년 5월 20일 오전 11시 5분 대구의 집 근처에서 누군가가 얼굴에 끼얹은 황산이 입과 눈으로 들어가 식도와 기도가 탔고 두 눈도 실명했다. "비명 소리에 뛰어나갔어요. '내 아이는 아니겠지' 하고 보니 옷은 반쯤 녹아내렸고 어깻죽지와 팔이 검게 타 있었는데… 아들이었요." 어린이의 엄마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이 땅속으로 꺼져든다고 했다. 어린이는 49일 만인 7월 8일 숨졌다.

어린이는 숨지기 전 옆집 한 어른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이 용의자를 증거가 없어 기소할 수 없다며 2005년 수사를 끝냈다. 부모는 작년 말 재수사 청원을 했고 경찰은 다시 수사에 나섰으나 결론은 같았다. 그러는 사이 살인죄 공소시효 만료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구지검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달라는 부모의 호소에 따라 묘책을 짜냈다. 공소시효 만료를 사흘 앞둔 지난 4일 부모에게 용의자를 살인죄로 고소하게 했고 검찰은 당일 용의자를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다. 부모는 곧바로 불기소 처분이 합당한지 가려달라는 재정(裁定)신청을 대구고법에 냈다. 대구고법은 3개월 안에 이 용의자를 기소하라고 결정할 수도 있고, 불기소 처분이 정당하다며 재정신청을 기각할 수도 있다.

법원 결정이 나올 때까지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결국 최장 3개월간 공소시효가 연장된 셈이다. 검경이 이 기간에 진범(眞犯)을 붙잡으면 기소해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진범을 잡지 못하거나 대구고법이 재정신청을 기각하면 그 이후엔 공소시효가 끝나 범인을 잡아도 소용이 없다.

국회는 2007년 12월 형사소송법을 고쳐 살인죄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연장했다. 그러나 이 법은 법 개정 이후 일어난 사건에만 적용된다. 그 한 해 전인 2006년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과 화성 여성 연쇄 살인 사건 공소시효가 끝났다. 두 사건 범인은 늑장을 부린 국회 덕분에 두 발 뻗고 편히 잠잘 것이다.

정부는 2012년 9월 26일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법안을 국회에 냈다. 그러나 국회는 작년 2월 19일 이 법안을 법사위에 상정한 뒤 지금껏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여론이 비등하면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앞다퉈 주장하다가 여론의 관심이 수그러들면 언제 그랬냐 하는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1998년 4월 16일 집에서 잠자던 두 딸을 처참히 살해당한 아버지는 2013년 4월 15일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고 한다. "15일 자정이 되는 순간 공소시효가 끝나거든요. 자정이 가까워져 오면서 1분, 1초 흐를 때마다 숨이 멎는 듯했어요." 지금도 어디에선가 살인 피해자들이 공소시효 만료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국회는 공소시효 폐지를 서둘러 이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