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사설
한 어린 소녀의 육체와 영혼에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조두순사건’ 이후로 우리 사회의 느슨한 법집행과 ‘온정주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한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2007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아동 성폭력사범 5천948명 중에서 42%인 2천501명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또 기소가 되더라도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무려 73%(2007년)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라는 보도도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법부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는 범죄자에 대한 ‘온정주의’가 널리 퍼지고 있다. 피해자의 인권보다는 가해자의 인권이 먼저 거론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실제적 법 감정과는 달리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사형폐지론’ 역시 이러한 ‘온정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을 터이다.
용서와 관용에 뿌리를 둔 ‘온정주의’는 도덕적 관점에서는 일견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의와 공익을 목표로 하는 법치사회라고 한다면 부정적인 면을 간과할 수 없다. 지나친 '온정주의’는 필연적으로 가치관의 혼란과 준법의식의 약화를 초래해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국감 시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7~12세 여아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발생 건수가 2006년 772건에서 2008년 1천5건으로 23.1% 증가했다고 발표했는데 이처럼 가파른 증가 추세는 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도 한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으리라. 또한 해마다 반복되는 대통령의 선심성 특별사면 역시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법치주의’에 대한 경시 풍조와 ‘준법정신의 해이(解弛)’를 초래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올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감면받은 음주운전자들 가운데 643명이 한 달도 지나기 전에 다시 음주단속에 적발된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요즘 우리사회에는 점점 심화되고 있는 부(富)의 ‘양극화’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필자는 경제적 ‘양극화’와 함께, 그것으로부터 파생할 ‘범죄 피해의 양극화’를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세상을 경악케 했던 연쇄살인이나 소위 ‘묻지마’ 범죄의 피해자는 대개 힘없는 서민들이 아니었는가. 과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영철사건’이나, 지난 2006년에 발생한 봉천동 연쇄살인사건, 혜슬 예슬 어린이 유괴사건, 고시원 방화사건 등의 표적도 대부분 서민들이었고, 그중에서도 여성이거나 힘없는 어린이들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범죄피해의 양극화’ 운운하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거나 과장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이 상류층 사람들보다 강력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많은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예컨대 유명한 부자동네에는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앞으로 더 많은 CCTV를 설치할 예정이라지만, 빈곤층이 몰려 사는, 속칭 달동네나 취약지구 등은 우범지대로 방치된 곳이 많은 것이 현실 아닌가.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범죄피해의 양극화’를 해소할 어떠한 해결책도 없이 단지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입지만을 위해서, 또는 휴머니즘의 과시를 위해서 온정주의를 부르짖거나 ‘사형제 폐지’를 이용한다면, 이것 역시 하나의 범죄 행위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정부는 경제적 ‘양극화’의 해소와 더불어 ‘사회 안전망’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백 동 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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